단원김홍도생애와 김홍도풍속화작품 감상
1. 단원김홍도생애김홍도는 조선시대에 가장 뛰어났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영조 21년(1745)에 태어나 정조 재위 24년을 거쳐 순조 6년(1806?)경까지 살았다고 본다. 졸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기년이 들어있는 그의 유작을 보면 환갑까지는 생존해 있
1. 풍속화의 개요
1) 풍속화의 개념
'풍속화'하면 일반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모습 등을 주제한 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신상, 종교, 정치, 생활, 사상 등 삶의 온갖 모습이 펼쳐져 있다. 필요한 식량을 안전하게 많이 확보하기를 절실하게 기원
서론
통속의 풍속화는 도석화道釋畵19),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 화훼화花卉畵, 산수 인물화, 초상화 등 여러 장르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김홍도(金弘道 1745-?)와 대를 이은 화원집안 출신으로 김홍도의 전통을 계승하여 풍속화의 전성기 동양화東洋畵에서, 도교道敎ㆍ불교佛敎 관계의 인물을
김홍도 등의 화원들의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그들 가난한 여항문인들은 신분제의 벽과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토해냈다. 중촌의 부유한 중인들은 풍악을 울리지만, 그들의 고달픈 생활은 평민과 친근한 것 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점점 확산돼 근대 시민사회의 싹으로 자라났던 여항문학운동 어린
김홍도가 민중들의 삶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현감 퇴임 후의 만년에는 지방의 권농(勸農)을 지내기도 했는데 1796년에는 용주사 부모은중경의 삽화, 1797년에는 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이러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장사로 부를 축적한 김한태
풍속화가로서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破寂圖」는 한 순간에 벌어진 상황에 의해 고요함이 깨어지는 찰나의 연속적인 동작을 묘사한 장면화로서 재치 있는 화면구성과 기지, 해학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Ⅱ. 혜원 신윤복의 일생
자는 입부(笠夫),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 화원(畵員)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 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
풍속화는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장르이다. 2)
김홍도에 이르러서는 도석과 속화가 실물과 거의 같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은 하늘이 낳은 능필이다. 3)
김홍도는 풍속과 사물의 양태를 잘 그렸으며, 또한 화초와 오리, 기러기도 잘 그렸다. 4)
김홍도는 자가 사능이며 호가 단원으